AI는 당신의 업무 노하우를 모릅니다
지난 글에서 조직에서 쓰이는 AI 도구를 만들려면 다섯 개의 전문 영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비개발자가 AI 도구를 못 만드는 진짜 이유) 그렇다면 그 구조적 문제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그 답으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머릿속 업무 지식이 AI에게 전달되지 않는가입니다.
핸즈온 세션 안에서, 강사가 반복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업무는 언제,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 업무인가요?"
"필요한 데이터를 어디서 가져오세요?"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만드세요?"
"어떤 절차로 데이터를 가공하세요?"
"그 결과물을 템플릿으로 표준화할 수 있나요?"
단순해 보이는 질문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답하려 하면 생각보다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수년간 매일 처리해온 업무인데, 막상 설명하려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 질문들에 하나씩 답하다 보면 참여자들은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내가 이 업무를 안다는 것과, AI가 이 업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구나."
업무를 아는 것과 그 지식을 AI가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꺼내는 것 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간격이 어디서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좁힐 수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AI가 재현할 수 없는 것
지난 글에서 영업 보고서 자동화 예시를 다뤘습니다. 임원용 요약본이라는 결과물은 눈에 보이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 AI에게 전달해야 할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지난주 대비 증감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떤 지역의 실적이 특히 주목받아야 하는가"와 같은 판단 기준. 베테랑 영업 관리자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면, 두 가지 데이터 사이의 간격이 보입니다.
하나는 결과 데이터입니다. 완성된 보고서, 최종 산출물처럼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AI에게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줘"라고 지시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다른 하나는 과정 데이터입니다. 결과를 만들기 위해 거치는 판단, 해석, 맥락입니다. "이 수치가 왜 중요한가", "예외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가"와 같은 것들입니다. 숙련된 담당자는 이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처리합니다. 오랜 경험이 쌓이면서 판단이 자동화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 자동화가 강점입니다. 그런데 AI에게는 반대입니다. AI는 명시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을 재현할 수 없습니다. 과정 데이터가 전달되지 않은 AI는 결과물의 형식은 따라갈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겨야 할 판단은 재현하지 못합니다. 보고서처럼 생긴 것은 만들 수 있지만, 베테랑 담당자가 만든 것과 같은 보고서는 만들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서론의 강사 질문들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질문들은 참여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과정 데이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 과정 데이터를 AI가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 그것이 형식지화입니다.
형식지화란 무엇인가
과정 데이터를 AI가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형식지화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담당자의 머릿속에서만 작동하던 판단 기준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언어로 꺼내어 구조화하는 작업입니다.
앞서 살펴본 영업 보고서 예시를 그대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형식지화가 이루어지려면 세 가지 작업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워크플로우 분해입니다.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을 단계별로 쪼개는 것입니다. "데이터를 받는다 → 이상값을 확인한다 → 증감률을 계산한다 → 해석 코멘트를 붙인다 → 포맷에 맞게 정리한다"처럼, 머릿속에서 한 번에 처리하던 흐름을 분리해서 나열합니다. 이 분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AI에게 전달할 단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판단 기준의 명문화입니다. 각 단계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를 언어로 적는 것입니다. "전주 대비 10% 이상 하락한 지역은 별도 코멘트를 추가한다", "누락 데이터가 있을 경우 직전 주 수치를 기준으로 처리한다"처럼, 암묵적으로 처리하던 예외 규칙과 판단 근거를 명시적으로 기록합니다.
세 번째는 처리 방식의 구분입니다. 분해된 각 단계가 알고리즘으로 처리할 것인지, 생성형 AI로 처리할 것인지를 나눕니다. 증감률 계산처럼 수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알고리즘으로, 해석 코멘트처럼 맥락과 판단이 필요한 것은 생성형 AI로 처리하는 식입니다. 이 구분이 없으면 생성형 AI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맡기거나, 반대로 단순 계산을 불필요하게 AI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 세 가지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형식지화입니다. 워크플로우를 분해하고 판단 기준을 명문화하는 순간, 그 업무는 특정 담당자에게 의존하는 암묵지에서 조직이 공유할 수 있는 자산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것이 앞선 글에서 다뤘던 설계 허들, 즉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시간이 소진된다"는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 지점이기도 합니다.
형식지화가 만들어내는 즉각적 변화
형식지화가 이루어지면 세 가지 변화가 즉각적으로 따라옵니다.
첫 번째는 도구의 재현 가능성입니다. 형식지화 이전의 도구는 만든 사람만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워크플로우의 흐름과 판단 기준이 담당자의 머릿속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지화가 이루어진 도구는 다릅니다. 워크플로우가 단계별로 분해되어 있고, 판단 기준이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만든 사람이 자리를 비워도 동료가 같은 결과물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도구가 비로소 "특정 사람의 것"에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는 유지보수의 가능성입니다. 형식지화되지 않은 도구는 업무 방식이 조금만 바뀌어도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어떤 로직으로 만들어졌는지 구조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형식지화가 이루어진 도구는 구조가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업무 변화가 생겼을 때 어느 단계의 어떤 판단 기준을 수정해야 하는지가 분명합니다. 담당자가 교체되어도 도구가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는 조직 지식의 보존입니다. 베테랑 담당자가 오랜 시간 쌓아온 업무 노하우는 대부분 인사 이동과 함께 조직을 떠납니다. 후임자는 처음부터 다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형식지화는 이 손실을 막습니다. 담당자의 판단 기준이 도구 안에 명문화되어 있으면, 그 노하우는 담당자가 자리를 옮긴 후에도 조직 안에 남습니다. 특정 사람에게 의존하던 암묵지가 조직이 공유하는 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변화는 AI 도구를 잘 만들기 위한 부수적 효과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를 짚어야 합니다. 형식지화는 앞선 글에서 다뤘던 5개 전문 영역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서비스 기획, 데이터 설계, 데이터베이스, UX/UI, 아키텍처와 보안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형식지화가 하는 일은 다른 것입니다. 머릿속에만 있던 업무 지식이 명문화되어야, 그 5개 영역을 구조적으로 보완해주는 환경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형식지화 없이는 어떤 구조를 갖춰도 비개발자의 업무 맥락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식지화는 5개 전문 영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 다음 조건, 즉 그 위에서 5개 영역을 실제로 보완해주는 환경이 무엇인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형식지화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
형식지화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해내는 것 사이에 큰 간격이 있습니다.
워크플로우를 단계별로 분해하고, 판단 기준을 언어로 꺼내고, 알고리즘과 생성형 AI의 처리 영역을 구분하는 것. 설명으로 들으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업무에 적용하려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수년간 몸에 밴 판단을 언어로 꺼내는 일은, 그 업무를 잘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업무에 익숙할수록 무엇이 암묵적으로 처리되고 있는지를 의식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핸즈온 현장에서 강사의 질문이 필요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형식지화는 혼자 책상에 앉아서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적절한 질문을 던져줄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그 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HRD 담당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형식지화가 일어나려면 참여자 개인의 의지나 역량에 기댈 수 없습니다. 형식지화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HRD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좋은 강사와 좋은 콘텐츠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머릿속에 있는 업무 지식이 AI가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나올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